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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기대 중간 강의평가에 대한 피드백

스승철 2022. 11. 18. 23:14

매주 강의가 끝나면 나는 학생들에게 수업에 대한 피드백을 구글 설문으로 받는다.
수업 내용이 어렵지는 않은지,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학생들이 남겨준 수업에 대한 피드백은 다음 강의 때 함께 공유하며 코멘트를 남기기도 한다.

한편, 내가 매주 받는 피드백 외에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받는 중간 강의평가가 따로 있다.
매주 내가 받는 피드백은 학번을 표기해야 하기 때문에 실명제나 다름없지만 이 중간 강의평가는 익명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학생들의 보다 진솔한 강의평을 받을 수 있다.

이 중간 강의평가 내용을 오늘 수업 시간에 함께 공유했다.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의견이 다수였지만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한 학생도 있다.
아래 글은 이와 관련하여 내가 학생들에게 남긴 글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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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수업 시간에 잠깐 언급하긴 했지만 못 들으신 분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공지합니다.
쓰다 보니 굉장히 긴 글이 되어버렸는데 그래도 여러분을 위해 남긴 글이니만큼 꼭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래 남겨드릴 글은 한 학생이 중간 강의평가 때 남기신 수업 진행 관련 컴플레인에 대한 저의 피드백입니다.
먼저 컴플레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수업 진행을 너무 학생들에게 자율로 맡기고 수업 준비를 소홀히 하는 것 같다.
둘째, 매 시간 피드백을 받지만 피드백에 대한 개선이 없는데 피드백을 왜 받는지 모르겠다.
셋째, 강의력이 좋은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컴플레인에 대하여 저는 반은 옳고 반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수업 시간에 제가 직접적으로 이론을 다루거나 문제를 푸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은 분명히 옳은 지적입니다.
학기초부터 말씀드렸듯이 저는 제가 여러분께 제시한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저 혼자서 일일이 설명하는 식으로 수업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여러분끼리 문제 풀어온 것에 대해 서로 의논하고 나와서 발표하도록 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죠.
저의 풀이법은 손필기 자료로 공유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업 시간 자체만 놓고 보면 저는 강의는 별로 하지도 않으면서 여러분에게만 이것저것 시키는 모습으로 비춰질 거라는 점 저도 공감합니다.
이 점은 수업을 듣는 학생 입장에서 볼 때 충분히 의아해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이에 관하여 상세한 언급은 생략하겠습니만, 수업을 준비하는 제 입장에서 볼 때 제가 이 수업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왔는지 한번쯤 상상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물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한다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한번 시도해보시고 조금이라도 제 입장에 공감을 느끼시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컴플레인은 사실 거의 매 학기 꼭 한 번씩은 받는 컴플레인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저의 답변은 거의 동일합니다.
여러분이 남겨주시는 피드백 중 제가 수용할 수 있는 피드백이 있는가 하면, 수용할 수 없는 피드백도 있다고 말이죠.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수업 운영 및 평가 방식은 어떤 상황에서든 반드시 학기 초에 공지한 틀을 유지할 것이며 이는 제가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아무리 여러 번 피드백을 주신다 하여도 제가 수용할 수 없습니다.

학기 초에 명시적으로 공지하지 않았더라도 제가 지향하는 교수법 방향과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한 피드백 역시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교수법에 관한 모든 세부 사항을 일일이 다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외에 제가 수용할 수 있는 피드백에 대해서는 저도 가능한 열린 자세로 반영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그 노력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절대 여러분의 피드백을 경시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 분명히 밝힙니다.

세 번째 컴플레인에 대해서는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제 강의력을 더 높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부족함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로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저는 강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강의를 듣는 학생들을 어떤 식으로든 변화시키는 데 있다고 봅니다.
강의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획득하거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도록 함으로써 앞으로의 인생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수업을 듣기 전과 비교했을 때 수업을 들은 이후로 뭐 하나라도 얻거나 달라진 게 있다면 중요한 목표는 달성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죠.

강의력 좋으신 교수님들의 강의는 이러한 점에서 충분히 메리트가 있습니다.
강의를 듣고만 있어도 중요한 내용들을 알기 쉽게 잘 짚어주시고 나도 좀만 하면 금방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갖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그런 생각이 들수록 여러분 스스로를 잘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내가 잘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로 많은 부분 나만의 착각이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쉽게 이해되는 것일수록 더 조심해야 합니다.
그 안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잘못 이해한 것은 없는지, 엉뚱한 내용과 연결시키고 있지는 않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점검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하나씩 쌓아 올라가야 오류와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스스로 찾아내는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공부란 결국 내가 아는 것을 조금씩 넓혀가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나누는 작업입니다.
이를 소홀히 하는 순간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뒤죽박죽 섞일 것이고 그럼 결국 안 배우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강의력 좋으신 교수님이든 그렇지 않은 교수님이든 그 교수님에게서 뭘 배우고 얻을지는 그 교수님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임할수록 여러분들은 더 많은 배움을 얻어가실 겁니다.
그렇지 않고 교수님 강의력에만 의존하며 스스로의 공부를 소홀히 한다면 좋은 성과를 얻기는 힘들 겁니다.

제가 추구하는 강의 방식이 여러분의 그것과 결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같냐 다르냐'의 문제이지 '맞냐 틀리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기왕 시작한 강의, 결이 조금은 다르더라도 학기말까지 다 같이 함께 열심히 해보면 좋겠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피드백도 달게 받을테니 앞으로도 진솔한 피드백 많이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글이 많이 길어졌네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