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쓰기

[Writable 8기] 과제4: ‘70살 나의 하루’

스승철 2020. 4. 19. 13:39

※ 과제4: ‘70살 나의 하루’

오늘은 2050년 12월 17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 6시에 일어나 
따뜻한 물 한 잔 마시고 서재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내는 어제 늦게까지 친구와 수다를 나누더니 
오늘은 늦잠을 자나보다. 
서재로 들어가 불을 켜고 어제에 이어 필사를 이어간다. 
필사는 언제 해도 마음에 평안과 위안을 준다. 
잡념을 정리하게 해주고 생각을 깊게 해준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필사. 
시작하길 정말 잘한 것 같다.

이렇게 매일 같이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글을 쓰고  캘리그라피를 남기는 것도 
벌써 30년이 넘었다. 
만 편이 넘는 필사를 일일이 관리하기가 벅차 시작한 
필사 책 쓰기 작업도 벌써 30권째다. 
처음에는 그저 나의 기록을 정리하려고 시작한 작업이었다. 
그랬던 것이 주변의 지인들에게 하나둘씩 알려지게 되고 
블로그와 SNS에서도 찾는 사람이 늘어나 
어느덧 10권째 정식 출간을 앞두고 있다.

필사는 남이 쓴 글을 옮겨 적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필사는 단순히 
남의 글을 그대로 흉내 내어 적는 행위로 그치지 않는다. 
남이 남긴 글은 나에게 화두로 다가온다. 
그 글을 옮겨 적으며 곱씹다 보면 
어느새 다른 생각을 하게끔 한다. 
떠오르는 생각을 나누고 파고들고 정리하다 보면 
나만의 글이 만들어진다. 
나에게 필사는 나만의 글을 쓰기 위한 
원동력이자 원천이나 다름없다.

필사를 마친 뒤에는 아내에게 바치는 글을 쓴다. 
반평생 동안 내 곁을 지켜준 
나의 반려이자 나의 소중한 아내. 
항상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해주고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게끔 해준 그녀와 
처음 만난 지 오늘로써 12000일째다. 
지금까지 함께 해준 그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글로 남겨본다. 
이 글은 다음 주에 있을 여행 때 
깜짝 선물로 줄 생각이다. 
그녀가 좋아해주면 좋겠다.

다음 주에 아내와 함께 갈 곳은 
우리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던 보라카이다. 
30여 년 전 함께 거닐었던 그 해변을 다시 함께 거닐고, 
함께 맞이했던 석양을 다시 함께 맞이하고, 
달빛 아래에서 함께 나누었던 춤도 다시 함께 나누고 싶어 
내가 먼저 제안한 여행이다. 
긴 세월이 흐른 만큼 그곳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나눈 소중한 추억들은 
내 마음 속에 여전히 남아있다.

 

※ 과제에 대한 소감

한번쯤은 이런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었다. 
일흔 살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십 년 후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하는 주제로 말이다. 
올해 내 나이는 마흔 하나이다. 
1980년생으로 아직 올해 생일이 지나기 않았기에 
굳이 만나이로 따지자면 아직 마흔 전이기는 하다. 
어느새 이렇게나 오랜 세월 동안 살아왔나 싶다. 
한편으로는 일흔 살까지는 이제 
30년 밖에 남지 않았구나 싶기도 하다.

세월의 무상함까지는 아니더라도
해가 갈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 같다.
지금까지 살면서 시간을 허투루 보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렇기에 나에게 주어진 앞으로의 남은 인생만은
더 알차고 더 빛나게 보내고 싶다.

이번 주 글쓰기 주제를 받았을 때, 
좀 더 멋지고 좀 더 근사한 삶을 사는 
일흔 살의 내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욕심이 너무 앞서다 보니 
오히려 글을 써 내려가기가 더 힘들었다. 
‘꿈꾸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그것은 내가 진정 바라고 꿈꾸는 모습이어야 한다. 
그게 아니고 그저 내 욕심만 잔뜩 담은 
모습을 그리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이런 생각과 함께 글을 처음부터 새로 썼다.
욕심은 버리고 내가 정말 꼭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며
글의 방향을 다시 잡았다.
그러고 나니 현재 내가 정말 감사하게 보내고 있는
매일매일의 내 일상이 30년 뒤에도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면 충분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보기엔 재미없겠지만 지금의 나는
더 없이 충만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이 글은 오늘의 내 일상을 담은 글이다.
내일의 내 일상을 담은 글이기도 하다.
하루하루가 쌓여 한 주가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해가 된다.
한 해를 사는 것처럼 한 달을,
한 달을 사는 것처럼 한 주를,
한 주를 사는 것처럼 하루를 살아가자.
그렇게만 살아간다면 지금의 내 일상도
한해 두해 이어져 일흔 살까지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내일 뜨는 해가 오늘 뜨는 해와 다르지만
결국 같은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