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의 시대》 필사 3일차 [누적 983일차] 인간은 세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 희망을 표출하는 유일한 생명체다. 인간은 세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 희망을 표출하는 유일한 생명체다. - 알렉산더 버트야니, "무관심의 시대" 필사 3일차 #필사 #캘리그라피 #알렉산더_버트야니 #무관심의_시대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것 자체가 희망이다. 현재를 온전히 누리는 건 행운이자 축복이다. 무엇을 기대하든 모든 것은 대부분 가능하다. 원하고 상상하고 몸을 움직여 행동하면 된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바꾸고 고쳐나갈 수 있다. 필사 & 캘리 2022.11.14
《무관심의 시대》 필사 2일차 [누적 982일차] 우리가 눈길을 주지 않으면 그 무엇도 현실이 될 수 없다. 우리가 눈길을 주지 않으면 그 무엇도 현실이 될 수 없다. - 알렉산더 버트야니, "무관심의 시대" 필사 2일차 #필사 #캘리그라피 #알렉산더_버트야니 #무관심의_시대 보려고 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보려고 노력한 뒤에야 겨우 보이기 시작한다. 보이는 것이 있어야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한발 한발 나아가며 만들어지는 게 현실이다. 보려고 노력하는 것들이 우리의 현실이 된다. 필사 & 캘리 2022.11.10
《무관심의 시대》 필사 1일차 [누적 981일차] 우리 자신의 삶을 소홀히 하면 삶도 우리를 소홀히 한다. 우리 자신의 삶을 소홀히 하면 삶도 우리를 소홀히 한다. - 알렉산더 버트야니, "무관심의 시대" 필사 1일차 #필사 #캘리그라피 #알렉산더_버트야니 #무관심의_시대 자신의 삶을 지켜야 하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더라도 돕는 데서 그친다. 나를 대신하여 살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삶의 그림은 언제나 내 손끝에서만 그려진다. 무엇을 그리느냐에 따라 삶도 나도 결정된다. 필사 & 캘리 2022.11.09
《죽음의 수용소에서》 필사 16일차 [누적 980일차] 희망도 믿음도 사랑도 명령하거나 지시할 수 없다. 희망도 믿음도 사랑도 명령하거나 지시할 수 없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필사 16일차 #필사 #캘리그라피 #빅터_프랭클 #죽음의_수용소에서 강요하더라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강요할수록 오히려 더 엇나가는 것들도 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강요할 수가 없다. 대신 판단하거나 결정해줄 수도 없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본인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fin. 필사 & 캘리 2022.11.07
《죽음의 수용소에서》 필사 15일차 [누적 979일차] 상황을 더 이상 바꿀 수 없을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상황을 더 이상 바꿀 수 없을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필사 15일차 #필사 #캘리그라피 #빅터_프랭클 #죽음의_수용소에서 상황을 바꾼다는 것이 항상 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상황을 해석하는 건 언제나 가능하다. 상황은 같아도 해석이 바뀌면 전략도 바뀐다. 전략이 바뀌면 태도가 바뀌고 결과도 바뀐다. 해석을 바꾸는 것이 나를 바꾸는 지름길이다. 필사 & 캘리 2022.11.06
《죽음의 수용소에서》 필사 14일차 [누적 978일차]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의 내면이나 그의 정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필사 14일차 #필사 #캘리그라피 #빅터_프랭클 #죽음의_수용소에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해진 답이 없다. 그저 각자의 의미를 찾아가며 살아갈 뿐이다. 혼자 고민한다고 의미를 깨닫는 것도 아니다. 함께 지내는 세상 속에서만 의미는 주어진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내가 살아가는 의미다. 필사 & 캘리 2022.11.05
《죽음의 수용소에서》 필사 13일차 [누적 977일차]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필사 13일차 #필사 #캘리그라피 #빅터_프랭클 #죽음의_수용소에서 실수했음을 미리 안다면 실수란 없을 것이다. 잘못했음을 미리 깨달으면 잘못할 일도 없다.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막지 못한다. 이미 일어난 실수와 잘못도 돌이키지 못한다. 준비하지 못한 모든 일들은 우리의 책임이다. 필사 & 캘리 2022.11.03
《죽음의 수용소에서》 필사 12일차 [누적 976일차] 인간은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인간은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필사 12일차 #필사 #캘리그라피 #빅터_프랭클 #죽음의_수용소에서 책임을 부담할수록 내 역할은 점점 늘어난다. 책임을 거부할수록 내 역할은 점점 줄어든다. 역할이 줄어든 채로는 주인공이 되기 어렵다. 나의 삶을 위해서는 주인공부터 되어야 한다. 삶의 주인공으로 남아야 나의 삶을 살아간다. 필사 & 캘리 2022.11.02
《죽음의 수용소에서》 필사 11일차 [누적 975일차] 사람에게는 누구나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할 특정한 일과 사명이 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할 특정한 일과 사명이 있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필사 11일차 #필사 #캘리그라피 #빅터_프랭클 #죽음의_수용소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무엇을 할지는 반드시 정해야만 한다. 최종적으로 정해야 할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하나의 결정은 항상 다른 결정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정해가는 과정을 통해 삶은 유지된다. 필사 & 캘리 2022.11.01
《죽음의 수용소에서》 필사 10일차 [누적 974일차] 인간은 고민과 권태의 양 극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도록 운명지어진 존재다. 인간은 고민과 권태의 양 극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도록 운명지어진 존재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필사 10일차 #필사 #캘리그라피 #빅터_프랭클 #죽음의_수용소에서 몸과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고민은 생겨난다.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권태가 싹튼다. 무엇을 할지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게 여긴다. 우리들의 삶은 고민과 권태 사이에 펼쳐진다. 필사 & 캘리 2022.10.26